Business

팀 허니브레드
Team HoneyBread
가장 소중했던 팀 허니브레드.
이때 배웠던 것들이 창업자로써 성장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해 주었습니다.
나는 왜 창업이 하고 싶을까.
오랫동안 고민했던 질문이다.
왜 나는 창업을 하고 싶을까? 그동안 다른 안정적인 직장이나 정해진 길을 따라갈 수 있는 기회도 무지 많았지만, 나는 굳이, 굳이 이 추잡하고 고생스러운 길을 택했다. 이 길이라. 창업가의 길? 사업가의 길?
사실 나 스스로에게 창업가, 사업가라는 타이틀을 붙이면 기분은 좋다. 그러나 나는 아직 그곳에 전혀 다다르지 못한 사람 같아서, 창업을 하고 싶다는 말을 다음과 같이 바꿔 부르고 싶다. 어쩌면 내가 스타트업을 열망하는 이유이기도 할 테다.
나는 자유롭게 살고 싶다.
자유롭게 산다는 것은.
자유롭게 산다는 것은 무얼까? 현대 사회를 살아가는 인간에게 기본적으로 부여된 권리인 자유. 우리는 그것을 정말 누리며 살아가고 있는가? 적어도 내가 겪어 온 바에 의하면 절대 아닌 것 같았다. 우리는 높은 성적과 좋은 직장, 높은 지위를 요구받는다. 오랫동안 지속된 자본주의에서 어쩔 수 없는 흐름이겠다. 나는 그것이 싫었다. 그것은 나에게 때때로 반항심을 불러일으켰고, 때때로 내게 폭력이었고, 슬픔이었으며, 치유할 수 없는 이별의 원인 중 하나이기도 했다. 내게 자유란, 사회의 틀과 고정관념에 얽매이지 않고 모든 감각과 생각을 차단한 후 내 마음속 목소리가 울리는 대로 살아가는 힘이다. 즉, 자유란 저항하는 것이다.
자유와 창업
사실 처음에는 그랬다. 자유롭게 살고 싶어서. 그리고 솔직히 이야기하자면, 스타트업이 세상에 저항하는 일이라 믿었다. 그러나 스타트업들도 일종의 거시경제의 흐름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현 상황에서, 스타트업만큼 레거시한 것도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타당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것은 아니지만, “이뤄 온 것”으로 평가받아 수백억 원대의 시드 투자를 유지하고 수많은 전략적 투자를 통해 만들어지는 스타트업들을 보면, 때론 이 일이 저항하는 일이 맞는지 되뇌게 된다.
역시 직업은 저항의 수단이 될 수 없다.
저항의 자유는 역시 살아가는 태도에 있겠다.
혁명
때때로 혁명을 상상한다. AI로 인해 인간 노동의 가치는 사라지고 있다.
혹자는 자본주의의 몰락을 예견한다.
혼란스럽고 어려운 세상이지만, 적어도 나는 혁명이 수요에 의해서나 공급에 의해서, 아래에서부터나 위에서부터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그저 잔존하는 철학이 이 세상의 모델을 온전히 설명해 줄 수 없을 때 일어난다고 믿는다. 지금이 그런 시기인 것 같기는 하다.
의무
결국 자유, 저항, 혁명까지 이어지는 단어들은 내가 이 길을 선택한 이유에 매우 가까운 것이다. 사실 그저 이유일 뿐이다.
이유는, 초심은 사라진다. 그럴 수밖에 없다. 초심의 흔적을 찾을 수는 있어도 초심 그 자체를 온전히 보존할 수는 없다. 초심이 그대로 있다면 그것은 성장하지 못했다는 확증이기도 할 테다.
초심에서 더더욱 강건한 이유를 찾아내든, 변심하든, 포기하든, 그것조차 저항이고 자유일 수 있다. 어쨌든 선택한 일에는 책임을 져야 하고, 그것은 의무가 될 일이다.
초심들은 그저, 정말 그저 벼랑 끝에서 나를 자유의 바다로 몰아넣은 작은 손짓일 뿐이다. 이곳에서 헤엄치다 뗏목 조각을 모아 거친 바다를 항해해야 하는 것은 내 몫이다.
그것은 생존이라고도 볼 수 있으나, 굳이, 굳이 나라는 사람을 믿어 주는 이들을 위한 의무이며 과거의 나 자신을 위한 의무이기도 하다. 올바르게, 온전하게, 잘, 원활히 나아가는 것.
사랑
결국 본질은 여기로 이어지나 보다.
혁명과 세상의 변화, 그리고 돈을 버는 행위는 언뜻 사랑과는 전혀 연관이 없어 보인다. 그 흔한 유저 인터뷰에서도, 그 흔한 BMC에서도 사랑을 직접적으로 찾아보긴 어렵다.
하지만 세상이 필요로 하는 것을 만들고, 그 과정을 최대한 올바르게 하려 하고, 팀원들을 이끄는 일은 사랑이 없으면 매우 어렵다.
나는 첫 팀이었던 허니브레드 때 사람을 바꾸어 팀을 완성하려 했었고, 이것이 나의 심각한 오만이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팀을 위한 사람은 없다. 사람을 위한 팀이 있을 뿐.
유독 어렸고 미숙했던 우리들이었지만, 결국 나는 그 팀을 완성해야 했다. 리더였기 때문이다.
조직의 붕괴는 여러 이유로, 다양한 사건들을 겪으며 일어난다. 잘잘못을 따지고 책임을 논할 수는 있어도, 결국 그 책임은 온전히 리더의 몫이다. 여기는 법정 싸움이 아니고, 그저 인생에 있어 많은 것들을 경험하고 과거를 위무하며 나아가는 한 사람의 항해일 뿐이기 때문이다.
나는 허니브레드라는 항해를 기쁘게 끝마치지 못했다. 암초에 부딪혀 좌초되었다. 그 과정은 너무나도 고통스러웠고, 아직도 나는 그때의 팀원들을 그리워하고 아낀다.
우리가 지금도 함께 일하고 있을, 매우 희박하고 또 희박한 소년 같은 여러 가능성들을.
하지만 이 고통과 어려움을 겪고 나니 모든 것들을 아름다움으로 받아들일 수 있게 되었다. 아름다움에서 '아름'이 '나'라는 뜻이라는 것을 아는가?
우리는, 나는 미완성이었지만 그래도 나다웠던 것이다. 팀원을 잃고 몇 년 동안 아파했던 나는, 연약하고 미련 많은 사람이기도 할 테지만, 그것이 나인 것이다.
그리고 그 사랑과 그 후회가 좋은 리더를 만든다.
결국 모든 것을 사랑으로 볼 줄 알아야 한다. 고객, 팀원, 과정, 결과.